T R A V E L
불국사
펜션에서 차량으로 약 6분

토함산의 중턱에 자리하고 있는 불국사와 석굴암은 찬란한 신라 불교문화의 핵심으로

신라 법흥왕 15년에그 어머니 뜻에 따라 나라의 안정과 백성의 평안을 위하여 세워졌으며,

그 후 신라 경덕왕 10년 때 재상 김대성이 다시 지어 절의 면모를 새롭게 하였습니다.

그 뒤 임진왜란으로 건물은 물론 값진 보물들이 거의 불에 타거나 약탈되었습니다.

하지만 지속적인 원형복구 및 보수로 국보 7점을 간직한

오늘날 대사찰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습니다.

토함산의 중턱에 자리하고 있는 불국사와 석굴암은 찬란한 신라 불교문화의 핵심으로 신라 법흥왕 15년에그 어머니 뜻에 따라 나라의 안정과 백성의 평안을 위하여 세워졌으며, 그 후 신라 경덕왕 10년 때 재상 김대성이 다시 지어 절의 면모를 새롭게 하였습니다. 그 뒤 임진왜란으로 건물은 물론 값진 보물들이 거의 불에 타거나 약탈되었습니다. 하지만 지속적인 원형복구 및 보수로 국보 7점을 간직한 오늘날 대사찰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습니다.

석굴암
펜션에서 차량으로 약 19분

문화재청에 등록된 정식 명칭은 석굴암석굴이며,

삼국유사에 나오는 원래 이름은 석불사입니다. 임진왜란 이후 불국사에 예속되었고,

1910년경부터 일본인들이 석불사 대신 현재의 석굴암으로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문화재청에 등록된 정식 명칭은 석굴암석굴이며, 삼국유사에 나오는 원래 이름은 석불사입니다. 임진왜란 이후 불국사에 예속되었고, 1910년경부터 일본인들이 석불사 대신 현재의 석굴암으로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동궁와 월지
펜션에서 차량으로 약 19분

동궁과 월지는 신라가 삼국 통일을 이룬 직후인 문무왕 14년에

황룡사 서남쪽 372m 지점에 조성되었습니다.

큰 연못 가운데 3개의 섬을 배치하고 북쪽과 동쪽으로는

무산을 나타내는 12개 봉우리로 구성된 산을 만들었는데

이것은 동양의 신선 사상을 상징한 것이라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섬과 봉우리에는 아름다운 꽃과 나무를 심고

진귀한 동물을 길렀다는 가장 대표적인 신라의 원지입니다.

동궁과 월지는 신라가 삼국 통일을 이룬 직후인 문무왕 14년에 황룡사 서남쪽 372m 지점에 조성되었습니다. 큰 연못 가운데 3개의 섬을 배치하고 북쪽과 동쪽으로는 무산을 나타내는 12개 봉우리로 구성된 산을 만들었는데 이것은 동양의 신선 사상을 상징한 것이라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섬과 봉우리에는 아름다운 꽃과 나무를 심고 진귀한 동물을 길렀다는 가장 대표적인 신라의 원지입니다.

첨성대
펜션에서 차량으로 약 21분

국보 제31호. 삼국시대 신라 시기의 천문 관측소입니다.

높이 약 9.5m. 첨성대가 위치한 곳은 옛날에는 경주부 남쪽 월남리라고 하였고,

계림의 북방 약 150∼200m, 내물왕릉 동북방 약 300m 되는 곳이다.

이 근방을 속칭 비두골이라고도 합니다.

국보 제31호. 삼국시대 신라 시기의 천문 관측소입니다. 높이 약 9.5m. 첨성대가 위치한 곳은 옛날에는 경주부 남쪽 월남리라고 하였고, 계림의 북방 약 150∼200m, 내물왕릉 동북방 약 300m 되는 곳이다. 이 근방을 속칭 비두골이라고도 합니다.